“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이지요.” 시간을 두고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순간과 지금의 순간을 포개어, 그대로 남은 것과 사라져버린 것과 아직 찾지 못한 것을 떠올려본 이라면, 보르헤스의 이 문장을 읽으며 옅은 미소를 짓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처럼 말이다.
이 책에는 이렇듯 한동안 잊고 지낸 독서의 입구와 출구 그리고 통과 지점을 돌아보게 하는, 그리하여 내가 무엇을 읽어 왔고, 어떻게 읽고 있고, 어디로 읽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읽기의 말들’ 120가지가 담겨 있다.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 어디든 데려다주는 건 책밖에 없지 않니.”에서 시작해 “어떤 책이든 언제나 너무 길다!”는 플로베르의 푸념 아닌 아쉬움으로 끝나는 이야기 속에서, 이 땅 위에 존재했을 갖가지 읽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기에 왕도가 없듯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어디를 펼쳐도 각기 다른 읽기의 풍경이 펼쳐지니, 그저 구경하듯 지나쳐도 괜찮고, 어느 길에선가 저자가 앞서 걸어간 흔적을 발견해 따라가도 상관없다. 어디에서 어떤 책을 읽든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결사를 구성"하기 마련이니, 이것이야말로 책 읽기의 진짜 쓸모가 아닐까. 일단 그렇게 믿으며 나의 읽기를 이어간다, 당신의 읽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