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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나약하기 때문에-쉽게 부서져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오히려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이 폭풍을 불러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무심한 몸짓, 사소한 거짓말, 작은 오해 하나가 삶을 송두리째 부서뜨리고 다시 세울 수 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인과관계의 고리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금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시간이다.
첫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서머싯 몸 상을, <암스테르담>으로 부커 상을 수상하는 등, 영미권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등장한 이언 매큐언. 그는 한층 더 묵직하고 결이 촘촘해진 언어로 세 남녀의 인생이 뒤틀어진 '운명의 그날'을 그려나간다.
소설가를 꿈꾸는 브리오니는 고집이 세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감수성이 예민한 열세 살 소녀다. 모든 것이 낯설고 강렬하게 느껴지던 어느 여름날, 브리오니의 오해로 인해 그녀의 언니 세실리아와 의대진학을 앞에 둔 총명한 청년 로비의 삶은 (그리고 사랑은) 참혹하게 파괴당한다.
지은이는 이후 세 사람의 일생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아날 거라고 하지만, 한번 지나가버리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인생'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는 것.
이미 두 사람은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었고, 자신도 모르는 새 가해자가 되어버린 소녀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며 평생을 보내야 한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서술처럼,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바란 없다. 그저 눈감아 버리지 않고 똑바로 진실을 응시하며 이야기할 것. 최선을 다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폭로하는 의무만이 남아있을 뿐.
치밀하게 잘 짜여진 구성과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 전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영화 '아이리스'를 연출한 리처드 에어경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 박하영(2003-09-15)